글또 9기 활동이 절반 가량 진행될 즈음, 글쓰기 세미나가 열려 참석하게 되었다. (혹시나 글또를 모르시는 분이 있다면 요 링크 참고)
글쓰기 세미나에서는
-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소를 탐색하고,
-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나만의 글쓰기 프로세스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를 주로 다뤘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찔리는 부분도 많았고, 이건 그래도 잘 하고 있지 않나 하면서 스스로를 칭찬했던 부분도 있었는데 세미나 과제 겸 글쓰기에 대한 회고를 진행해 볼 겸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현재의 글쓰기 프로세스 (이상적인 건 아님..)
1. 아이디어 탐색
생각나는 게 있으면 엄청 간략한 수준으로 기록을 해 놓는데 그게 대개 아래 항목과 같다.
- 내가 궁금했던 것
- 개념을 직관적으로 정리하면 좋을 것 같은 개념 (어렵게 공부한 걸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좀 쉽게 이해하면 좋겠다는 마음..)
내가 궁금했던 것, 써보고 싶어서 근질근질한 것들이 머리 속에 불현듯 스치면 메모하듯 적어놓는다.
2. 목차 작성
목차 작성의 개념이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내 경우는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하나의 유기적인 이야기로 보일까를 고민하며 스토리라인을 짜는 게 목차 작성이다.
내가 특정 개념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다면 요 작업이 술술 이뤄지는데,
쓰고 싶다는 소재만 있고 구체적으로 뭘 해보고 싶다는 구상이 되지 않은 경우는 이 작업이 굉장히 길어지고 괴로워진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네, 수준만 간신히 비껴나게 되는 게 많았다. 대체로 목차 작성 단계부터 틀어지면 이후의 진행되는 글쓰기 프로세스가 같이 망하게 되어 만족도가 낮은 글을 쓰게 됐던 것 같다.
3. 목차 작성이 끝나면 추가 공부
예전에는 공부를 하면서 글을 쓰기도 했는데, 요즘은 거의 알고 있는 개념을 정리하는 차원의 글을 쓴다. (요건 잘 하고 있는 포인트 같다.)
글을 쓰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되면, 공부하는 시간을 따로 확보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글쓰기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게 어쩔 수 없는 시간도 있었는데 데이터 분석가로 포지션을 변경한지 얼마 안 된 시점에는 아는 게 정말 별로 없었기 때문에 글을 쓰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의 관심 분야도 세분화되고, 공부하는 데 시간을 따로 할애할 수 있게 되면서 위의 문제는 조금 나아졌지만 공부한 이후에 시간이 지나서 까먹게 되었거나 헷갈리는 개념들은 한 번 다시 본다.
그러면서 목차를 다시 수정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선 목차 → 후 개념 보완 순서대로 진행하는 편이다.
4. 초안 작성
초안 작성은 크게 2개 과정으로 다시 나뉜다. 짜투리 시간에 목차에 맞춰 대충 러프하게 쭉 글을 써 본다.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개념을 부족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 다시 추가 공부 단계로 돌아가기도 한다.
짜투리 시간에 짬짬이 초안(러프버전)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짜투리 시간에 뭔가 한다는 성취감 + 미리 뭔가를 써 놓아서 나중에 빈 부분만 채우면 된다는 안정감을 주는 이점이 있다.
그리고 주말에 러프 버전의 초안을 채우는 초안을 다시 쓴다. 이 때는 대충 휘갈겨 쓴 문장을 문장답게 형식을 맞춰 쓰거나, 적절한 짤을 찾거나 수식을 써야 하는 경우는 LaTex 를 찾아가면서 수식을 걸기도 한다. 이미 앞에 만들어놓은 뼈대가 있기 때문에 시간은 좀 오래 걸려도 심적 부담은 많이 줄여놓은 상태다.
5. 퇴고
작성한 초안을 비공개로 해놓고, 쭉 살펴본다. 읽기에 레이아웃이 불편해 보이지는 않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수식이 깨져 나오지는 않는지, 문법이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지 등을 검수한다. 대충 위 단계를 3회씩 밟고, 시간은 1~2시간 정도 쓰는 편인데 그렇게 해도 나중에 보면 이상한 게 발견된다.. 퇴고는 시간을 오래 쓰면 쓸 수록 글이 좋아지는 것 같다.
개선이 필요한 점
프로세스는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편이라 언뜻 보면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글을 쓰면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포인트들은 계속 있었다.
비교적 만족스러운 글 :
길드는 유저를 응집시킬 수 있을까? 인과추론으로 바라보는 길드 영향력 분석 (링크)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는 힘, 낙관성 (링크)
불만족스러웠던 글 :
엔믹스는 왜 스페인어에 진심일까? (링크)
인과추론 학습기 - 회귀 불연속 (링크)
만족/불만족의 기준이 굉장히 감정적 요소에 좌지우지되는 편이긴 한데, 만족스러운 글은 글을 쓰는 과정이 신났고, 불만족스러운 글은 목차 작성부터 뭔가 괴로운 느낌이 있었다.
그 괴로움의 느낌을 세미나를 통해 무엇이 원인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상독자 선정의 부재" 였다. 사실 기술글쓰기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분석 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위 문제가 똑같이 영향을 준다.
내가 신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른 사람과 핏이 맞으면 그 글은 운이 좋게 잘 풀리게 되고,
내가 신나지도 않고, 핏도 안 맞으면 성과가 나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기술블로그 작성 팁에 "예상 독자를 미리 명시해두면 좋아요" 라는 내용이 있는 걸 알고 있기도 하고,
얼마 전에 완강한 유데미의 테크니컬 글쓰기의 내용에도 강조하는 내용이었지만 쉽게 잘 고쳐지지 않는 내용이었는데, 세미나를 들으면서 그리고 또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면서 다시금 또 부족한 점을 깨닫게 되었다..
굳이 예상 독자를 블로그에 써놓지 않더라도, 이 글을 읽는 예상 독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그래서 나는 어느 톤으로 글을 써야 하는지 스스로 알고 있어야 했고,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어떤 행동을 하길 바라는지 설정해 놓았어야 했다. "내가 신나서 글을 쓴다, 나의 호기심을 충족한다"도 글을 쓰는 목적이 될 수 있겠지만, 내가 아닌 다른 독자 역시도 나의 글을 읽고 긍정적인 효과를 받을 수 있어야 진짜 "기술 블로그"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은 바로 적용해보아야 하는 법. 피드백을 받기도 했고 스스로도 불만족스럽게 느껴졌던
"엔믹스는 왜 스페인어에 진심일까?"에 대한 글을 수정해보았다.
글 수정 비하인드
수정한 글 : https://blessedby-clt.tistory.com/64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예상 독자의 부재다. 내가 궁금했던 내용을 소재로 잡았는데, 막상 소재만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 목차를 잡는 것이 매우 괴로웠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 했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재기도 하고, 재밌어 했던 소재라 버리기는 또 아까웠다.
피드백을 받으면서 "내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해 조사하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을 독자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숨은 니즈를 파악할 수 있었고, 이걸 실현하기 위해 글 구조 자체를 다시 뜯어 고쳤다.
-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조사하면서 흥미로웠던 지점을 전면에 배치하자.
-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의도를 알게 하는 게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내 의도를 대놓고 명시하자.
- 엔믹스라는 그룹에 대해 조금은 홍보가 되면 좋겠다.
라는 의도를 갖고, 엔믹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 - 엔터 산업 - JYP 소개 - 가설을 풀어나가는 형식으로 목차를 뜯어 고쳤다.
조금은 덜 주접글로 보이고 싶어서 자료 조사를 더 보강했고, 되도록이면 조사한 내용을 글에 요약해서 녹여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기사, 동영상 링크들을 많이 첨부하기는 했지만 글만 보고도 링크 내용을 대략 파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정 이후 조금은 덜 주접글 같아진 것 같아 소기의 목표를 만족하기는 했지만, 명색이 데이터 분석가인데 직접 분석한 내용은 없고 여기저기 리서치한 내용을 조각모음처럼 가져다 붙인 건 여전히 아쉽다. 분석까지 가지 못한 건, 도메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결국 내가 알고 있는 걸 글로 쓰는 게 중요함.)
예상독자"와 "나의 의도"를 잘 고려하여 만족스러운 글 쓰기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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