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단단한 삶'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책 초반부를 빼면, 그다지 내 취향의 책도 아니었고 지금에 와서는 기억에 남는 부분도 많이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도입부의 메시지는 상당히 인상 깊다.
자립은 많은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의존하는 사람이 늘어날 때 사람은 더욱 자립한다.
굉장히 모순적인 메시지로 보이지만, 작가의 부연설명을 읽고 어느 정도 납득을 하기는 했다. 사람은 혼자 존재할 수 없기에 자립을 위해 집착하다보면 오히려 돈, 물질과 같은 것에 종속되어 버리고, 그러면 돈을 버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될까봐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조금 더 기술블로그처럼 보이기 위해, 모형 하나를 사용하는 것보다 여러 개의 모형을 조화롭게 사용하는 '앙상블'을 사용하는 것이 모형의 성능을 좋게 만드는 것처럼 하나의 가치관을 고집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과 교류하고 의존하는 것이 인생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예시를 바꿔볼 수도 있겠다.
이 메시지가 강렬하게 와닿았던 건, 남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스스로 더 초라해보이는 것 같은 느낌을 근래 강렬하게 느꼈기 때문인 듯 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글또 방학 기간동안 나름대로 이런 저런 것들을 해 봤다.
- 업무에는 하등 쓸 일이 없는 딥러닝 공부를 해보며 기분전환, 코세라 딥러닝 특화과정을 마쳤다. 후반부로 갈수록 뭔지도 모르고 듣기만 해서 하나도 모르는 게 함정이지만.
- 글또 커뮤니티에서 책쓰기 모임 홍보 글을 보고,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맨땅에 글을 써 봄. 통계를 기반으로 한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컨셉만 갖고 뭘 쓰지는 나중에 고민하다보니, 당연히 책은 커녕 소목차 하나도 구성할 분량도 못 썼다. 그렇지만 그 글을 모아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고, 4트만에 브런치 작가 신청이 승인되었다! (확인해보니 20년도부터 1년에 한 번씩 신청했더라...)
- 의도적으로 기술 관련 책보다는 인문/사회와 관련된 책 읽기를 했다. 기술 책만 읽으면 뭔가 해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어 다양한 책을 소화해보려고 했지만, 사실 기술 책만 안 읽었다 뿐이지 많이 편식했다.
관심사를 넓히고, 다양한 것을 경험할수록 특히 내가 못 한다고 생각한 걸 그럭저럭 해냈을 때, 무언가 힐링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하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책 쓰기 모임에 참여하며, 나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행위가 글을 쓰는 그 순간을 넘어, 그 글을 다시 읽게 되는 미래에도 '내가 이런 대견한 생각도 했었구나' 하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글또 5기부터 참여하며 부족하고 어설프지만, 꾸준히 작성해 온 지금의 블로그를 보면서도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연스레 이번에도 글또 9기 활동을 신청했다. '내가 이런 것에 흥미를 뒀었구나, 이런 걸 공부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록이 내가 순간 순간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증거물로 남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또, 다양한 분야에 계신 분들의 글을 보거나 커피챗에 참여하면서 나 하나의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가치관이나 사고 체계가 더 넓어지는 느낌을 받는 것도 좋았다.
생각해보면 글또 활동에 충실했던 시기에는 번뇌도 크게 없었던 것 같다. 아마 뭐 하나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들과 교류하며 조금 더 넓은 마음, 마치 호연지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글또 9기를 참여하는 마음은, 뭔가 이런 걸 공부할 거야, 기술 블로그를 성장시킬거야 같은 거창한 마음보다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도전해보면서 그 안에서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분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는 뜻이다.
사실 그동안 뭔가 목표를 잡았어도, 달성 여부에 관계 없이 결국 목표에 크게 연연않고 내 맘대로 했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에는 다짐을 명시해보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글또 구성원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그러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고, 또 가능하다면 이론과 수식이 난무하는 블로그의 방향성을 조금 더 다채롭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이론이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잘 모르더라도 용기 있게 내 의견을 샤라웃해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랄까..
그리고 글쓰기의 즐거움을 좀 더 스스로 느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압력이 있어야만 글을 쓰는 패턴이지만 그 압력 덕에 내 커리어에 대한 커밋을 만들고, 히스토리를 쌓아올 수 있었다. 압력이 없어도 스스로 글을 즐겁게 쓸 수 있다면 나에 대한 히스토리를 잘 쌓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글또 구성원 분들과 만남의 기회를 자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고민을 나누는 시간은 큰 자양분이 되었기에, 최대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가능하다면 내가 먼저 나서서 기회를 만들어볼 수 있으면 한다.
그냥 그냥,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서로 의존하며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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