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한동안 멀리 하다 8월 말쯤부터 다시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이동진 평론가처럼 책을 읽고 멋진 생각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출근길이나 주말에 몇 시간쯤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독서 애호가쯤은 될 것 같다.
프레이밍 효과로 독서량 회복하기
중간에 독서 공백기가 왜 발생하게 되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책을 접하는 시간이나 기회가 줄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무슨 동어반복 같은 이야기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이해를 위해 좀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책꽂이에 쌓아두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책이 눈에 밟혔던 시기가 있었다. 좋아보여서 책을 샀다가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자연히 안 읽게 된 책들이었는데 대개 자기 계발서나 실용서의 성격을 띤 책들이 잔여 이슈(?)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양이 제법 됐고, 그 책들을 보고 있자니 스스로 책만 쌓아두는 "북 호더(hoarder)"처럼 느껴졌다.
(** hoader : 저장강박, 물건을 저장해 두어야 한다는 인식된 필요성으로 인해 소유물을 버리거나 소유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지속적인 증상을 뜻한다고 하는데, 보통 애니멀 호더 이런 식으로 관리할 역량이 안 되는데 무작정 늘리는 걸 말할 때도 쓰이는 듯 하다.)
그런고로 이 책들을 다 읽어야 북 호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또 돈도 아깝지 않을 것이니 책꽂이에 있는 책을 해치우기 전까지 책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안 읽고 남겨둔 책은 이유가 있던 법.. 읽을 마음이 들지 않는 책을 읽어야만 한다고 다짐하니 독서는 진척이 나갈 수 없었고 그런 와중에 책을 사야 한다는 마음을 눌러야 하기 때문에 독서와 관련된 알고리즘을 멀리하면서 자연히 독서가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단어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적독이었다. 책을 읽지 않고 쌓아두는 사람을 놀림조로 일컫는 말이라고는 하나 그 어감은 제법 고급져 보였다. "북 호더"와 "적독가" 둘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이냐라고 물어보면 주저 없이 "적독가"를 고를 것 같았다. 그러면서 책을 사는 것에 대한 장벽이 확 낮아졌다.
그래 책은 미리 사놓은 책 중에 골라 읽는 거지! 하면서 이것저것 다시 책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관심 가는 책들 중에 일부는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도 하면서 자연히 독서량이 회복되었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또, 그 무렵에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많기도 했었다. 일을 시작한 지 꽤나 시간이 지났는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여전히 없었고 그런데다 성장이 정체되는 것 같아 크게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정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맞는걸까 하는 고민이 들었고 그러면서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쌓아둔 자계서를 읽으면 더 압박을 느낄 것 같아 손이 더 안 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히 철학이나 에세이 같은 "비(非)" 실용서에 손이 가게 되었다.
가장 도움이 되었던 책은 위 인증에는 없지만
- 세네카의 "인생이 왜 짧은가" (행복론으로 개정판이 나왔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서 구판을 읽었다.)
- 카우식바수의 "경제학자는 어떻게 인생의 답을 찾는가"
라는 책이었다.
"인생이 왜 짧은가" 라는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우리의 인생은 짧고 유한하나, 사사로운 것에 연연하지 않고 가치 있는 것에 시간을 쓰면 충분히 길고 넉넉하게 쓸 수 있다 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인상깊었던 구절은
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 오래까지 지속되고 그들은 신체의 허약함과 싸우게 되지요. 그들이 노년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니라 노년이 그들을 물러나게 하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법보다는 자신으로부터 여가를 얻기가 더 어렵지요.
이 문구였는데, 막연히 커리어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내게 해주는 말 같았다. 걱정한들 체력과 에너지만 쓰고 딱히 좋아지는 것도 없고, 충분히 쉬어야 할 시기에 쉬지 않고 나 스스로와 싸우는 게 정말 시간을 잘 쓰는 것인가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던 것 같다.
"경제학자는 어떻게 인생의 답을 찾는가"는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여러 문제에 대한 답을 내는 책이다. 게임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내쉬균형"인데 대표적으로 죄수의 딜레마를 들 수 있겠다.
죄수 A와 B가 협력해서 자백을 하지 않으면 최상의 결과를 얻지만,
- 상대가 배신하고 자백한다고 가정하면 나도 자백을 해야 하고 (내가 침묵하면 징역 10년, 내가 자백하면 5년)
- 상대가 협력해서 침묵한다고 가정해도 자백을 하는 게 더 유리(내가 침묵하면 1년, 내가 자백하면 석방) 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 모두가 자백을 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죄수의 딜레마이다.
이렇듯 게임 참여자가 상대의 전략에 따라 최선의 대응을 하며, 상대의 여러 수를 고려한 끝에 각자가 선택을 바꾸지 않을 최적 전략을 내쉬균형이라고 하는데 이때 전략은 철저하게 게임 참여자의 전략에만 영향을 받는다. 가령 위 예시에서 "갑자기 간수의 마음이 바뀌면 어떻게 하지?"라든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가석방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이 예측 불가능한 요소를 대입하면 게임이론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게임이론적 사고를 강조하며 내가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를 걱정하기보다는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을 강구하는 게 더 현명하다고 말한다.
이 역시도 내 통제 밖에 벗어난 일들을 걱정하며 불안감을 느끼는 내게 꼭 필요한 조언 같았다.
글또 활동다짐
글의 제목처럼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그리고 마지막 10기 글또의 첫 글을 쓰는 시점도 가을이다.
북 호더라는 표현 대신 적독가라는 표현을 쓰면서 내 정체성을 바꿨던 것처럼,
글또에 참여하며 좋은 글을 쓰고, 그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도 이미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글또에도 놓치지 않고 참여한 스스로에게 칭찬을 한 번 더 해본다. (그리고 글또에 참여한 다른 모든 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10기의 활동 기간은 6개월로 어찌 보면 짧고, 또 유한하다. 그렇기에 가치있고 더 소중하다. 그 안에서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시간을 쓰며 다양한 것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 여러 소모임 채널에도 열심히 참여해보고,
- 먼저 커피챗 신청도 해보고,
- 좀 더 양질의 글을 쓰도록 노력해 보면서 이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고 싶다.
글또 외적으로도 예전부터 생각만 하고, 망하면 어떻게 하지 싶어 도전하지 못했던 것들도 이것저것 찍먹해볼 예정이다. (봉사활동 참여, 뮤지컬 관람이 일단 예정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좀 더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불안의 가지치기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인과추론, 베이지안, 프로덕트에 좀 더 공부의 집중도를 높이게 될 것 같다.
글또에 제출할 글의 방향도 인과추론 / 베이지안 통계 / 프로덕트 분석 위주로 가져가려고 한다.
잔가지를 치더라도 그것의 근원이 불안이 아니라 재미에 있도록 조정하려고 한다. (ex. 범주형 분석, 비모수 분석, ML, 데이터 엔지니어링)
그런고로 이번 기수의 다짐글도 길어졌지만, 결론은 고민하기보다 좀 더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것이니
좀 급작스럽게 글을 마쳐본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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