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이 글은 "피드백"이라는 소재를 딴 자기 고백의 글입니다.
한 개인의 부끄러운 흑역사가 쏟아질 예정이므로, 항마력이 약하신 분들은 게시글을 읽을 때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근래 직장에서 피드백을 하게 되는 일이 많이 생겼다. 글쓰는 개발자 모임 글또 활동을 하면서 다른 분들이 쓰신 글에 대해 피드백을 그래도 조금씩 했었고, "피드백 유경험자니까 그래도 괜찮겠지?" 하며 조금은 만만하게 보기도 했던 것 같은데 피드백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1. 미시적인 피드백은 간단할 수도 있다.
사실 글또 활동에서의 피드백도 녹록치 않았다. 그 이유인즉슨 나만이 유독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베이스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른 분들은 차를 타고 부릉부릉, 비행기를 타고 슝슝 날아다닐 때 나만 뚜벅뚜벅 걷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나는 엑셀로 vlookup 으로 일일이 노가다하는 건을 다른 분들은 이미 파이썬으로 자동화하고, 더 큰 그림을 보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비유가 적절치 않은 것 같은데 아무튼 기술이 부족하다는 연유로 내 피드백은 기술적인 것들을 건드리기보다는 글의 레이아웃이나 오탈자를 찾는 것 위주였다.
직장에서는 그래도 구성원 간 공통적으로 합의가 돼서 진행이 되는 것들이 많다 보니, 기술력의 격차 등의 이슈가 없을 것이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피드백 경험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레이아웃에 어색한 부분이 있는지, 그래프에서 범례가 빠져 있지는 않은지, 오탈자가 없는지 등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 오탈자가 있는가?
- 문장에 어색한 부분이 없는가?
- 표나 그래프에 빠진 부분은 있는가?
한 사람이 만든 아웃풋을 숲이라고 하면, 나무 선에서 이렇게 가지치기를 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는 않을 수 있다.
2. 하지만 거시적으로 봐야한다면 어떨까?
위에서 "아웃풋 = 숲", "세부사항에 대한 피드백 = 가지치기"라는 비유를 했는데, 이에 덧붙여 "피드백을 해주는 사람 = 숲 관리자"라고 가정해본다. 숲을 관리하는 사람은 가지만 잘 쳐서 되는 것이 아니고 숲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어느 구역은 성장이 더디지 않은지, 특정 나무 품종이 지나치게 많지는 않은지 등을 체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하면, 전체적으로 아웃풋이 어긋나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웃풋이 문서라고 하면, 문서가 논리적으로 비약은 없는지, 논리에 상충되는 부분은 없는지 등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논리적인 완결성을 갖추는지) 또한, 처음 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독자 친화적으로 쓰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하는 핵심메시지"가 무엇일까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글의 핵심 메시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피드백도 많이 받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하고 싶은 말이 명확히 없을 때" 글이 헛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역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문서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았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야"라고 한 문장으로 쓸 수 있을 때까지 목차를 가다듬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박태환처럼 수영을 잘 하고 싶어"라고 말해도 수영 능력이 월등하게 좋아지지 않는 것처럼 "핵심 메시지를 갖고 글을 써야지" 해도 그렇게 빠르게 되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타인의 문서에서 "핵심 메시지를 찾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읽은 책 "로지컬 싱킹" 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써 있었다.
- 상대에게 전달할 "과제"를 확인하고, 상대가 어떤 반응을 기대하는지 명확하게 한 다음 답변 내용을 생각해야 하며이 답변에는 "결론", "근거", "방법"에 대한 요소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 어떤 사실(데이터 분석가에게는 데이터)을 So What?(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거 어따 써먹을건데?) 과정을 반복해서 "과제"에 대한 핵심 결론을 도출해야 하고, Why so?(이게 왜 이렇게 되는건데? 이거 써먹을 수 있는 거 맞아?) 과정을 반복해서 결론에서 근거를 바라볼 때 어색함이 없어야 한다.
글을 논리적으로 작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쭉 쓰기는 했는데, 결국 내가 논리를 갖춰야만 피드백이 가능해지므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피드백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3. 피드백은 결국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에 Technical한 내용들을 쓰기는 했지만, "피드백을 주고 받는 대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이 부분이 피드백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자기 피드백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피드백"이라는 것은 화자와 청자, 각 개인 사이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이 때, 나와 너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소통에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같은 언어 체계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개념은 아니겠지만, 내 의도와 관계 없이 상대방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상대의 반응을 보고 상대를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이 점이 피드백의 가장 중요한 점이자, 무서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철학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예전에 어떤 스님께서 "사람이 태어날 때 각자 우주가 생기고, 사람이 죽을 때 그 우주가 사라진다. 무언가에 대해 각자마다 해석을 하면서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 나가고, 그 해석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을 때 그 우주가 사라진다"는 느낌으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 또한 나의 우주에서 해석된 것이기에 스님의 의도와 다를 수 있다.)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착하게 말해보아요" 라든지, "상대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상대의 성향에 맞게 메시지를 구성해보아요"라든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부분도 스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의 우주" 안에서 기분 나쁘지 않을 만한 것들이 상대방에게는 기분이 나쁠 수 있고, 상대의 반응이 내 깊숙한 마음을 건드려서 객관적인 해석을 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이 쯤 되면 객관적인 해석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사실 요즘 스스로 굉장히 편협한 사람임을 느끼고 있다.(이 또한 자각하고는 있지만 편협함을 없애자, 라고 다짐하거나 말하는 차원으로는 사라지지 않기에 쉽게 고치지는 못하고 있다.)
내가 내 입장에서, '나라면 저러지 않았을텐데?' 라고 생각하고, 그 상태에서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다보니 내 감정에 갇히고 부정적인 쪽으로 치달을 때가 있었다. 혼자 폭주하면서 타인을 내 방식대로 판단했다. 그리고 정말 부끄러운 건, 나 역시도 누군가 보기에는 이해가 굉장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 그 부분을 팀장님이나 다른 분들이 온전히 품어주었고 배려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로남불을 시전하며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나만의 필터링을 쓰고 보는 피드백이 온전히 이루어질리가 없다. 피드백이 어렵게 느껴졌던 건, 온전히 내 편협한 시각에만 의존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기), 그리고 타인의 입장을 공감하도록 노력하는 것. 자꾸 기술적인 것에 시작점을 두려고 하지말고, 타인과 나는 다르다는 그 당연한 명제에 시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부끄러운 삽질을 하며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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