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에서 데이터 분석(?) 직무로 일한지 어느덧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짧다면 한없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기간인 것 같지만,
누군가 내게 ‘당신은 프로 데이터 분석가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거기에 대해서 당당히 말할 자신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데이터 분석가’로서의 역량 진단
자신감이 없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직도 업무가 주어지면 막막하고 버겁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처음보다 나아진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수습기간을 보낼 때는 ‘SQL 쿼리’를 작성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 전에 IT 컨설턴트로 일할 때, 단기성 프로젝트에 투입돼서 3개월 간 SQL을 써본 게 다였고, 그 이후 리서처로만 2년 가까이 일하면서 그나마도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에 초반에는 외부에서 간단한 데이터 추출 요청이 들어오면 요란뽀짝하게 지름길도 돌아가는 복잡한 쿼리로 데이터를 추출해냈다(..)
지금은 SQL로 데이터를 추출하는 게 제법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데이터를 기반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업무는 아직도 너무 버겁다.
버거운 이유도 세려고 하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이 많지만 몇 가지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 도메인 지식이 부족하다.
대학교 때부터 게임에 거의 영혼까지 바쳤을 정도로 게임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유저의 입장이다.
게임회사 소속이라는 건, 결국 유저 그 이상의 것을 봐야하는데.. 아직 도메인 지식이 부족해서 게임을 기획하거나 개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데이터를 바라보지 못한다.
단적으로, ‘잔존율’에 대한 정보도 내가 보는 것과, 기획자, 개발자, 사업팀에서 보는 것은 깊이가 다를 것이다.
개발자 입장에서 필요한 정보가 무엇일지 찾는 것도 어렵고, 어찌저찌 가설을 세우더라도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데이터가 무엇일까 생각하면 가슴이 웅장할 정도로 막막해진다.
- 일 머리가 없다.
정말 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특히 프로그래머(개발자) 중에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개발 코드 작성부터 깔끔하다.
깔끔한 개발코드 작성을 위해서는 결국 1) 내가 뭘 하려는지 명확하게 알고, 2) 그 목표까지 가는데 필요한 것, 그리고 불필요한 것을 확실하게 구분해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일머리가 없어서 그런지, 내가 뭘하고 싶은건지도 잘 모르겠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이를 위해 반복작업은 최소화해서 공수를 줄여야 하는데 그걸 구현을 못해내서, 결국 인간 자체가 강해져서, 스스로 매크로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반복 작업을 처리한다.
분석가에게 필요한 건 똑똑함인데 자꾸만 우직해진다.
- 분석가로서 가져야할 지식이 부족하다.
나름 통계학과를 졸업해서, 비전공자보다는 형편이 나을 수도 있어 보이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가령 ‘회귀분석’을 공부하겠다고 하면, 뭔가 내가 이미 다 아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그렇게 대충 훑고 나면, 결국 아는 것 같은 환상만 남은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거의 수리통계학 위주로 배웠어서.. 뭔가가 수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으면 넘어가질 못한다.
개인적으로 회사 업무와 관련해서 시계열을 배워두면 요긴하게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ACF가 왜 Normal(0, 1/n)에 근사하는지 이해를 못해서 다음 장을 못 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그나마 공부했던 것도 착실하게 휘발시키고 있다 ㅎ…
글또 지원 동기 & 이루고 싶은 것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을 여실히 깨닫고는 있지만, 정작 공부를 하는 것까지는 잘 이어지지는 않았다.
짬을 내서 공부를 하더라도,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니 금방 휘발되었다.
그나마 기록으로 남겨두었던 건 내 언어로 쓰인 거라 다시 보니 금방 기억이 나는데..
그게 아니면 영겁의 윤회를 하는 것처럼 공부의 윤회를 반복하게 되더라..
그러던 중 ‘글또 5기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공부를 꾸준히 하면서도, 기록으로 남길만한 강한 동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이거다!’하고 지원하게 되었다.
기대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면, 막상 글또 OT에 참여하고, 동일 도메인의 다른 지원자 분들의 개발 블로그 포스팅을 읽으면서 ‘와 내가 애송이구나’를 느끼고, 스스로에 대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분석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면, 그걸 그냥 채우면 될 일이다.
다른 분들을 보고 부족한 부분은 배울 수는 있어도, 그걸 나를 향한 비난의 화살촉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니,
결국 궁극적으로 글또를 통해 가장 궁극적으로 얻어가야 할 것은 “부족한 내가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스스로에 대한 인내심”일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인내심을 갖고, 나라는 사람에게 꾸준히 양분을 주는 시간을 갖는 게 궁극적으로 글또에서 이루고 싶은 내 목표이자 바람이다.
그리고 그 양분의 소재로 삼으려는 건,
내 현재의 실력보다 조금은 거창하지만
- 학부시절에 놓았던, 시계열 & 다변량 공부를 해서 실무에 적용할 수 있도록 기틀을 닦는 것
- 일하면서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용들 정리(= 업무 회고)
- 읽으면서 너무 괜찮다고 생각한 분석 보고서 등을 정리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개발 블로그와는 조금은 다른 성격이 될 것 같지만,
뭐 아무렴 어떠랴..
그저 6개월 후의 내가 조금 더 성장했으면 하는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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