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요즘 내가 가장 열심히 하는 게임을 말하자면, 뭐니 뭐니 해도 피크민 블룸(Pikmin Bloom)이다.

간단히 게임에 대해 소개하자면, 나이앤틱(Niantic)과 닌텐도가 협업해서 만든 위치 기반 모바일 게임이다. 나이앤틱의 전작인 포켓몬고와 비슷하게 "걷기"에 게이미피케이션을 입힌 그런 게임이라 할 수 있는데, 유저는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피크민을 수집하고, 피크민과 함께 꽃을 심으며 여러 가지 성장에 필요한 혜택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피크민과의 친밀도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장식을 가진 피크민을 얻으며 수집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처음에는 이 게임을 반신반의하며 시작했다. 포켓몬 고가 출시되었을 때 게임을 해 본 경험이 있는데, 약 1,000 시간의 포켓몬 플레이 경험이 있음에도 포켓몬 고에는 영 정을 붙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배틀을 사랑하는 성향(그래서 턴제 RPG 게임을 주로 하는 편이다)인지라 단순 수집형 게임으로 보이는 피크민에 정을 붙일 수 있을까? 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지만... 글또에 계신 분들께 강력 추천을 받아 시작하게 되었다.

입문 약 4개월, 누군가에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7만원이라는 금액을 피크민에 투자하고 말았다...!
단순 수집 게임에는 영 흥이 나지 않을 거라 말했던 과거의 나 자신을 우습게 비웃기라도 하듯, 요즘의 나는 피크민에 굉장히 과몰입하고 있다. (주말 새벽 6시 반 비몽사몽 눈을 떠서 게임을 들어갔다 나오는 그런 일을 반복하고 있다 😂)
도대체 피크민에 어떤 매력이 있어 나는 이렇게 과몰입을 하고 말았을까. 이렇게 과몰입을 하도록 만들 수 있는 프로덕트에 대해서는 나름의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분석 글을 써보려 한다.(나의 과금에 대한 변명과 함께..)
피크민 블룸에 대한 데이터를 구할 수 없어 어느 정도 상상(이라 쓰고 뇌피셜로 읽는)에 기반한 글이기에 어느 정도 유의하여 보면 좋을 것 같다.
프로덕트 관점에서 보는 게임
먼저 프로덕트 관점에서 "게임"이라는 서비스를 대입해보려 한다. 모든 프로덕트는 유저에게 가치를 제공한다. 그 제품의 가치가 유저에게 닿을 때 프로덕트는 성장하고, 그 수명을 유지할 수 있다.
게임이라는 프로덕트가 유저에게 줄 수 있는 가치는 "재미"다. 어떻게 보면 명확하고 어떻게 보면 추상적이다. 재미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자면 게임의 재미는 "유저가 스스로 적절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는가?"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유저 스스로가 목표가 없다면 게임에 흥미를 가지기 어렵고, 그 목표가 적절하지 않고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유저가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적정 수준의 난이도가 있을 때 유저는 동기 부여를 받고 몰입할 수 있다.
유저가 어떤 욕구(목표)를 갖고 있음에도, 거기에 쉽게 닿지 못한다는 것은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까지는 어떤 결핍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핍이 있으면 욕구가 발생하고, 욕구가 커진 상태에서 비로소 그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면 유저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결핍을 지속 가능한 구조로 유지하고, 그 결핍을 BM으로 잘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프로덕트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잘 설계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이 관점에서 피크민 블룸이라는 게임을 바라보자.
피크민 게임 시스템 분석
횡적 성장 중심의 게임
게임의 재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성장"이다. 이를테면 이전에는 클리어할 수 없던 단계를 며칠에 걸쳐 성장하고, 그 다음에 클리어가 가능해졌다고 가정해 보자.
"클리어를 할 수 없던 단계를 클리어했다" 그 자체가 목표일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클리어가 가능한 상태로 계정을 성장시킨다"는 행위 자체도 목표가 되어 유저에게 재미를 줄 수 있다. 그렇기에 성장은 재미에서 큰 축을 차지한다.
성장은 크게 종적 성장과 횡적 성장으로 나눌 수 있다.
- 종적 성장이란 캐릭터의 레벨을 올린다거나, 장비를 맞춰준다거나, 돌파를 시킨다거나 하여 하나의 캐릭터를 강하게 키우는 것을 의미하고,
- 횡적 성장이란 여러 캐릭터를 수집한다거나, 여러 캐릭터를 조금씩 키워 버프를 달성한다거나 하면서 캐릭터를 넓게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피크민도 종적 성장과 횡적 성장 개념이 있다.
- 종적 성장 : 피크민과 함께 걸으면서 친밀도를 쌓는다.
- 횡적 성장 : 다양한 데코를 가진 피크민을 수집한다.
기본적으로 피크민은 수집 게임이기 때문에 횡적 성장(다양한 데코를 가진 피크민을 수집한다) 그 자체가 유저에게 큰 목표가 될 때가 많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종적 성장이 횡적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써만 동작한다는 것이다.
친밀도를 4칸 이상 쌓으면 일반 피크민이 데코를 가진 피크민이 되는데, 일반적으로 유저의 목표는 데코를 가진 피크민을 획득한다에 그치기 때문에 피크민 하나를 끝없이 성장시키지 않고, 특정 시점(친밀도 4칸 완성)이 되는 순간 종적 성장이 완료된다.
이를 간단한 도식으로 표현하면 이런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피크민의 독특한 지점이라고 느꼈는데, 일반적인 게임은(특히 RPG 게임은) 유저가 종적 성장을 하도록 다양하게 성장 시스템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어렵게 성장시킨 캐릭터를 넣어 이득을 보고, 거기서 욕구가 충족되도록 만다는 게 일반적이고 나이앤틱의 전작인 포켓몬 고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포켓몬을 수집하는 것(횡적 성장)이 유저에게 중요한 목표 중 하나지만, 강화/진화를 통한 종적 성장도 매우 중요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횡적 성장만으로는 포켓몬 배틀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없고 종적 성장까지 완료해야 비로소 포켓몬 하나를 다 키웠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피크민은 종적 성장은 어느 시점이 지나면 완료되기 때문에 오로지 횡적 성장만 유저에게 중요한 목표로 동작하게 된다. 성장의 한 축을 목표에서 제거시키기 되면 결핍을 만들어내는데 불리할 수 밖에 없지만, 대신 피크민은 다른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버섯 시스템
종적 성장이든 횡적 성장이든 성장을 하면 그 성장을 유저가 체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주는데, 피크민 블룸에서는 "버섯"이라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실제 지역(GPS)에 기반하여 버섯이 일정 주기로 생성되는데, 여기에는 무료 기준으로 제한된 인원(5명)이 하루에 3회 들어갈 수 있다. 버섯에 입장하면 피크민들이 버섯을 마구마구 뿌수기 시작하는데 특정 조건을 만족할수록 버섯을 더 잘 뿌술 수 있다. 그렇게 버섯을 뿌수고 나면, 피크민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유저에게 제공한다.
성장 아이템을 유저에게 제공하는 것이면, 어차피 종적 시점이 종결되는 시기는 정해져 있고 조금 천천히 키우면 되잖아!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기에 내가 언급하지 않은 중요한 점이 간과되었다. 그것은 피크민은 매달 한정으로만 얻을 수 있는 피크민을 이벤트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해당 데코를 가진 피크민이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저는 이벤트 미션에 참가하는 것을 제1순위 목표로 둔다.
이벤트 미션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중요한 미션은 "버섯에 참여하는 것"으로 버섯을 참여하지 않으면, 이벤트 미션을 클리어할 수 없다. 또, 시즌마다 이벤트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한 꽃이 있는데 그 꽃을 얻기 위한 아이템이 버섯을 통해 드롭된다. 특히 이벤트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이벤트 버섯에 입장하는 것이 유리한데 거기서 이벤트 미션 클리어에 필요한 재화도 함께 드롭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피크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버섯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이벤트 버섯이라면 더더욱 좋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버섯은 5명까지만 무료입장이 가능하고, 5명이 이미 입장한 버섯에 들어가려면 "버섯 재충전 티켓"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무료입장인 3회를 초과해서 들어가려면 "버섯 재충전 티켓"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버섯이라는 녀석이 실제 지역에 기반하여 나타나게 되는데 문제는 그 지역 유동 인구수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도심지일수록 사람은 많은데 버섯이 그에 비례하여 더 많이, 자주 등장하지는 않기 때문에 경쟁률이 치솟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경우를 잠시 말해보자면, 회사 근처에서 버섯을 들어가려고 누르자마자 5명이 다 찼다고 튕겨나오는 일이 빈번했는데 이 과정에서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짜증을 느끼기도 했다(..그만큼 진심이었다.)
즉, 제한된 인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구조로 인해 유저는 "버섯 입장"이라는 결핍이 발생하게 되고 이 지점이 주요 BM으로 작용하게 된다.
한 가지 특이한 건, 친밀도가 높은 피크민(종적 성장이 더 된 피크민)일수록 버섯을 더 잘 뿌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데코를 가진 피크민, 특히 이벤트 버섯은 이벤트로만 얻을 수 있는 한정 피크민을 넣는 게 더 유리하다. 즉, 횡적 성장이 종적 성장보다 더 큰 우위를 가진다.
다시 말하자면 한정으로만 얻을 수 있는 피크민은 도감을 다 모으려는 수집 욕구를 자극하기에도 충분하지만, 버섯을 더 잘 뿌수고 싶은 유저에게도 워킹한다는 부분이다.
버섯을 다 뿌수면 뿌순 시점으로부터 5분 이후에 새로운 버섯이 리젠된다. 이렇게 입장이 치열하다면, 유저에게는 이번 버섯은 놓쳤지만 다음 버섯은 놓치지 않기 위해 이번 버섯이 언제 뿌서질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걷기 게임이지만 걸을 때만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 버섯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상시 접속이 필요하다. 어느 프로덕트든 그렇겠지만 유저가 앱에 계속 접속할수록 유리한데 버섯을 통해 게임에 계속 접속하도록 유도할 뿐 아니라, 입장 욕구를 계속 인지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거 이벤트 깨려면 이 버섯은 들어가야 한다, 나 아직 데코 피크민 다 못 모았다...)
여기까지의 논의를 간단한 도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피크민은 우리의 욕구를 어떻게 건드리는가
위에서 크게
- 피크민의 주요 목표는 횡적 성장(데코 피크민 수집)이고,
-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자, 성장을 체감(버섯을 잘 뿌순다)할 수 있는 요소가 버섯 시스템이라는 언급을 했다.
위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피크민은 랜덤으로만 획득할 수 있다. 이벤트를 아무리 열심히 참여해도 운이 나쁘면 모든 피크민을 다 획득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모든 피크민을 다 획득하기 위해 이벤트를 더 열심히 참여하거나, 아니면 확정으로 피크민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을 구매해야 한다.
이벤트를 열심히 참여하면 할수록 얻지 못한 피크민에 대한 욕구는 더 강해진다. 여기서 결핍을 느낀다면 유저는 상품을 구매하는 수순으로 갈 수 있다.

또, 피크민을 보관할 수 있는 슬롯 수가 정해져 있다. 이는 여러 다양한 종류의 데코를 가진 피크민을 얻어야 한다는 욕구와 충돌된다. 슬롯 수가 아쉬워질수록 유저는 슬롯 수를 늘리고 싶다는 충동을 더 느끼게 될 것이고 이는 "피크민 슬롯 수"를 늘리는 과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버섯 시스템은 5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다. 이벤트 미션을 깨야 피크민을 수집할 수 있는데 버섯을 들어갈 수 없다면 "버섯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은 버섯 수집을 가로막는 주 요소가 된다.
특히 도심지일수록 버섯 입장이 어려워지는데, 만일 도심에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소득이 더 높을 가능성이 크다는 가정을 한다면 이는 도심지에 사는 사람에게 더 큰 결핍을 제공하는 일종의 가격 차별화 전략이자 지역 기반의 유저 세그먼트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또, 버섯 리젠에 대한 정보를 유저가 직접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정보를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유저로 하여금 실시간으로 게임에 접속하도록 유도한다.
입장이 제한되는 경험, 이벤트를 깨고 싶은 욕구로 인해 유저의 플레이 시간은 증가하게 되고, 유저의 접속 동기 자체가 강한 결핍 상태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체류 경험은 과금 접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종합하면 피크민은 종적 성장에 대한 축을 굉장히 축소시킨 대신, 횡적 성장을 중심으로 BM의 축을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아무도 안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과금한 상품은
- 피크민 슬롯 수를 500개를 늘려주고 버섯 재입장 티켓도 주는 "피크민 컬렉션 스페셜 팩" (3만원)
- 버섯을 재입장할 수 있는 기회를 20 + n회(정확한 수치 기억 안 남) 늘려주는 "버섯 전투원 팩" (3만원)
- 피크민 슬롯 수와 모종 보관 수를 증가하는 아이템 구매 (만원 언저리)
이렇게 대략 7만원을 과금했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사람들은 내가 왜 과금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 이해해줄 것 같다. (혹은 변명이라 느낄 지 모르겠다.)
나가며
결핍을 통해 과금 욕구를 자극하는 전략은 프로덕트가 유저에게 제품의 가치를 잘 제공할 때 사용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성장 욕구를 자극하고 싶지 않은 정도로 게임이 엉성하다면 유저에게 목표를 제공하지도 못하고 결핍을 자극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크민 블룸은 매우 잘 만든 게임이다.
피크민의 하찮아 보이는 귀여움을 데코와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잘 구현했고,
친구들과의 상호작용, 룩 꾸미기 등 피크민 수집 이외의 재미도 충실히 구현했다.
피크민 수집과 걷기를 효과적으로 연결시킨 부분도 좋다.
피크민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내 뇌피셜에 기반한 게임 시스템 분석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피크민 블룸이 잘 만든 게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BM도 중요하지만, 역시 뭐니 뭐니 해도 BM이라는 것이 성립하려 제품의 완성도가 중요하지 않나?라는 것이 지금까지 내 글의 핵심적인 결론이다.
여러분 이렇게 재미있는 피크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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